백두산 천지에 올랐던 날|30년 가까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풍경
오래된 사진을 정리하다가 1998년 백두산 천지에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사진의 색은 세월만큼 조금 바랬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 그날 천지를 처음 마주했던 기억은 생각보다 선명하게 되살아났습니다.
1998년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여행지 사진과 영상을 미리 찾아보는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백두산 역시 제게는 지도나 책을 통해 접하던 곳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던 중 중국에 머물면서 백두산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고, 일행과 함께 길을 나서게 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백두산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정확한 일정의 세세한 부분은 희미해졌지만, 정상 가까이 올라가 처음 천지를 마주했던 순간만큼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 차를 타고 정상 가까이 올라갔던 백두산
백두산으로 올라가던 과정부터 평범한 여행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차량을 타고 상당히 높은 곳까지 이동했는데 산을 올라갈수록 길이 가팔라졌던 기억이 납니다. 차가 꽤 높은 곳까지 올라간 뒤 내려서 조금 더 이동하자 마침내 천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관광시설이 잘 갖춰진 모습을 기대할 수 있는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차량을 타고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상당히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산 아래에서 바라보던 백두산과 위에 올라가 직접 바라보는 풍경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서자 주변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고 무엇보다 공기가 참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그 풍경이 얼마나 오래 기억에 남을지 몰랐습니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장소와 날짜가 뒤섞이기도 하는데, 백두산 정상으로 올라가던 장면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비교적 또렷합니다.
2. 안개 없이 활짝 열렸던 백두산 천지
그리고 마침내 천지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백두산 천지는 날씨 변화가 심해 정상까지 올라가더라도 구름이나 안개 때문에 전체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방문했던 날은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햇빛이 환하게 비쳤고 시야를 가리는 안개도 거의 없었습니다. 높은 산봉우리 사이에 커다란 천지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푸른 물과 천지를 둘러싼 산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처음 보는 순간에는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게 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백두산 천지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지만 1998년에는 달랐습니다. 사진으로 몇 번 본 풍경과 내가 직접 그곳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의 차이는 컸습니다.
천지 맞은편으로 북한 땅이 이어져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느낌도 묘했습니다. 우리가 늘 ‘백두산’이라고 부르던 그 산에 직접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조금씩 실감났습니다.
그날 찍은 오래된 사진에 천지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도 날씨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사진을 다시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도 “그날 정말 천지가 잘 보였었지.”였습니다.
3. 온천 계란과 백두산에서 보낸 하룻밤
천지만큼이나 재미있게 남아 있는 기억이 내려오는 길에 본 온천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곳을 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계란을 뜨거운 물에 넣어 익히는 모습이 특히 신기했습니다. 물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모습과 그 안에서 계란을 익히던 풍경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백두산 일대에는 실제 온천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뜨거운 온천수와 함께 계란을 익혀 먹는 모습도 오랫동안 관광객들에게 알려져 왔습니다. 정상의 웅장한 천지를 보고 내려와 바로 이런 풍경을 만난다는 것도 백두산 여행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던 색다른 기억이었습니다.
그날은 바로 돌아오지 않고 백두산 인근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하루 동안 높은 산을 오르고 천지를 바라본 뒤 산 아래에서 쉬면서 느꼈던 맑은 공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 날 백두산을 내려오면서 일정은 끝났지만, 그날의 풍경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4. 시간이 흘러도 다시 떠오르는 백두산 천지
1998년이면 벌써 거의 30년 전입니다. 그동안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모든 여행지가 똑같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날짜나 이동 과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흐려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풍경은 사진 한 장만 보아도 그 순간이 다시 떠오릅니다. 저에게 백두산 천지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오래된 사진을 다시 꺼내 보면서 맑게 열렸던 하늘과 산봉우리 사이로 펼쳐졌던 천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봅니다. 특히 제가 갔던 날처럼 안개가 걷히고 천지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만난다면,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백두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정상에서 천지를 보는 것만 생각하기보다 올라가는 길의 산세와 내려오면서 만나는 온천지대 등 주변 풍경까지 천천히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날씨에 따라 천지를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정에는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준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백두산 천지는 한 번쯤 직접 마주해 볼 만한 풍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1998년 그곳에서 보았던 천지를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여행에서 남는 것은 결국 사진 몇 장일지 모르지만, 그 사진 한 장이 수십 년 뒤 잊고 있던 하루를 다시 꺼내주기도 합니다. 이번에 오래된 사진을 찾으면서 저에게는 백두산의 그날이 다시 그런 하루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