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의 추억, 선전 세계지창에서 마주한 풍경과 새로운 도전
1999년 12월 말, 새로운 천년인 2000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중국 남부를 여행했습니다. 하이난과 주하이를 거쳐 선전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찾은 곳이 세계지창(世界之窗)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을 훌쩍 넘긴 오래전 여행입니다. 하지만 당시 찍어두었던 사진 한 장을 다시 꺼내보니 잊고 있던 풍경과 그날 처음 경험했던 일들이 하나둘 다시 떠오릅니다.
1. 개장 5년 만에 찾아간 선전 세계지창
세계지창은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 건축물과 자연 풍경을 한곳에 축소해 재현해 놓은 대형 테마파크입니다. 1994년에 문을 열었으니 제가 방문했던 1999년에는 개장한 지 약 5년 정도 지난 때였습니다.
지금은 해외여행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한 장소에서 세계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신기했습니다.
파리의 에펠탑을 비롯해 이집트 피라미드, 인도의 타지마할,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 이름으로 접했던 세계적인 명소들이 공원 곳곳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사진 뒤에도 세계지창을 상징하는 에펠탑 모형이 보입니다.
당시에는 한 장소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풍경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1999년의 여행은 지금과 여행 방법부터 달랐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모토로라 휴대전화가 상당히 고급 제품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사진과 같은 작은 모토로라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며 한국과 연락했습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찾거나 사진을 찍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휴대전화는 주로 전화를 걸고 받는 용도로 사용했고, 여행지의 모습은 별도의 카메라로 사진을 남겨야 했습니다.
지금은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사진 촬영부터 지도, 번역, 연락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사진을 다시 보면 세계지창의 풍경뿐 아니라 그때 사용했던 작은 모토로라 휴대전화까지 함께 떠오릅니다.
지금보다 훨씬 불편했던 여행이지만, 눈앞의 풍경을 직접 보고 기억에 담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2.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계지창
세계지창은 규모가 상당히 컸습니다. 걸어서 여러 곳을 둘러보기도 했지만 높은 곳에서 공원 전체를 내려다보며 이동할 수 있는 시설도 이용했습니다.
높은 곳을 따라 이동하면서 아래를 바라보니 걸어서 구경할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여러 나라의 축소 건축물과 넓은 공원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마치 작은 세계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했습니다.
그날 세계지창에서 기억에 남은 것은 건축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원래 높이 올라가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놀이기구를 무서워해서 잘 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일행들과 함께 용기를 내어 놀이기구 하나에 처음 도전해봤습니다.
정확한 놀이기구 이름은 세월이 오래 지나 이제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왔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자리에 앉았을 때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괜히 탄다고 했나?’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니 긴장도 됐지만 끝까지 타고 내려왔습니다. 다 타고 난 뒤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물을 구경했던 것도 특별했지만, 평소 무서워서 피했던 놀이기구에 처음 도전했던 경험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3. 사진 속 흰색 옷이 이어준 또 하나의 선전 이야기
오래된 사진을 다시 꺼내보니 관광지의 모습뿐 아니라 제가 입고 있던 흰색 옷도 눈에 들어옵니다.
이 옷은 세계지창에 가기 전 선전의 중잉제(中英街)에서 구입했습니다. 별도의 통행 절차를 거쳐 들어갔던 특별한 쇼핑거리에서 여러 물건을 구경하다가 구입한 옷이었습니다.
그 옷을 입고 세계지창을 찾았고 그곳에서 사진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사진 한 장을 보면 세계지창에서 보낸 하루만 생각나는 것이 아닙니다. 중잉제에서 물건을 구경했던 기억과 선전에서 보낸 시간까지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집니다.
여행에서는 유명한 관광지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산 물건 하나와 처음 해본 경험 하나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여행 전체를 다시 불러오기도 합니다.
1999년 12월 말, 새로운 천년을 며칠 앞두고 찾았던 선전 세계지창.
당시에는 앞으로 휴대전화 하나로 사진을 찍고, 지도를 찾고, 세계 어디서든 소식을 주고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사진을 다시 바라보니 무엇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처음 해보았는지가 더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이 20년을 훌쩍 넘긴 여행의 기억을 다시 이어주는 것을 보면, 여행은 끝나도 그날의 한 장면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