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 중잉제 여행|통행증을 받아 들어갔던 특별한 쇼핑거리

 

1999년 12월 말, 주하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배를 타고 선전(심천)으로 향했습니다. 한 시간가량 지나 선전에 도착하니 현지에서 픽업을 나온 분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 뒤 안내를 받아 찾아간 곳이 바로 중잉제(中英街)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선전에 있는 유명한 쇼핑거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일반 시장과는 분위기부터 달랐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곳이 아니라 별도의 통행 절차가 필요한 특별한 구역이었습니다. 저희 일행도 현지에서 미리 준비해 준 통행증이 있었기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통행증을 확인받고 시장에 들어간다는 것부터 당시의 제게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1. 선전과 홍콩이 맞닿은 작은 거리, 중잉제

중잉제는 선전 옌톈구 사터우자오에 자리한 독특한 거리입니다.

주 도로의 길이는 약 250m, 폭은 3~4m 정도로 크지 않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선전과 홍콩의 경계에 형성된 거리라는 데 있습니다. 현재도 사터우자오 변경특별관리구역에 속해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일반적인 관광시장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가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별도의 통행 절차가 필요했고, 저희도 미리 준비된 통행증을 확인받은 뒤에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좁은 거리 양쪽으로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이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이를 오가며 옷도 보고 시계도 보고 여러 상품의 가격을 물어봤습니다. 홍콩과 선전이 맞닿아 있는 특별한 거리에서 다양한 상품을 한자리에서 구경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무척 신기했습니다.

지금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제 기억 속 풍경에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중잉제는 한때 ‘쇼핑 천국’으로 불릴 만큼 상업이 활발했던 곳으로, 의류와 생활용품뿐 아니라 화장품과 소형가전, 사진기기 등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던 곳이었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라기보다 선전과 홍콩의 역사와 생활이 한 거리에서 맞닿아 있던 특별한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2. 싸다고 선뜻 살 수 없었던 물건들

저도 중잉제에 가기 전에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사려고 돈을 어느 정도 준비해 갔습니다.

실제로 둘러보니 눈길이 가는 물건이 많았습니다. 옷도 구경하고 시계도 보면서 이것저것 가격을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함께 간 일행들이 자꾸 조심하라고 말렸습니다.

“싸다고 무조건 사지 마세요. 잘못 사면 모조품을 살 수도 있어요.”

물론 중잉제에서 판매하던 상품이 모두 그랬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였고, 낯선 여행자인 제가 상품의 진위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가격만 보면 사고 싶은 물건이 적지 않았지만, 싸다는 이유만으로 덥석 샀다가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것저것 사볼 생각이었지만 시계처럼 가격이 나가는 물건은 결국 사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이었습니다.

관광지나 유명한 쇼핑거리에서는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물건을 선택하기보다 품질과 진위를 살펴보고, 확신하기 어려운 고가품은 신중하게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전 여행에서 경험한 일이지만 지금 여행을 떠날 때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부분입니다.

3. 흰색의 얇은 코트에 남은 여행의 기억

고가품은 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는 가죽 코트를 가지고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잉제를 둘러보다가 깔끔한 흰색의 얇은 코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꼭 필요한 옷은 아니었지만 직접 입어보니 생각보다 잘 어울렸고 핏도 단정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상인과 가격을 조금 흥정한 끝에 그 흰색 코트를 기분 좋게 구입했습니다.

당시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산 것이 아니라 그저 입어보고 마음에 들어서 산 옷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 옛 여행사진을 다시 꺼내보니 바로 그 흰색 코트를 입고 찍은 제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옷을 고르던 순간부터 좁은 거리 양쪽에 이어져 있던 상점들, 여러 물건을 구경하던 모습, 통행증을 확인받고 들어가던 순간까지 하나씩 다시 떠올랐습니다.

화려하고 비싼 물건보다 그곳에서 직접 보고 경험했던 기억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그때로부터 2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의 선전은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발전했습니다. 중잉제 역시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쇼핑거리라는 의미를 넘어, 선전과 홍콩이 맞닿아 온 역사와 시간을 살펴볼 수 있는 독특한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선전을 여행하게 된다면 화려하게 발전한 도심만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중잉제처럼 도시의 지난 시간을 품고 있는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여행을 조금 더 깊게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에게도 중잉제는 단순히 흰색 코트를 샀던 쇼핑거리만은 아닙니다.

통행증을 받아 들어갔던 경험, 거리 양쪽으로 늘어서 있던 상점들, 물건을 살까 말까 고민했던 순간, 가격을 흥정해 흰색 코트를 샀던 기억까지 모두 합쳐져 그 시절 선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여행은 그 순간에는 하루의 일정으로 지나갑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오래된 사진을 다시 꺼내보면 그 시대의 도시 풍경과 그 시절의 나를 함께 만날 수 있는 기록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오랜 시간이 지난 여행을 다시 기록해 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